에디슨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

에디슨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

봄써니 2005. 7. 11. 13:07

책 내용
에디슨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다.
최근 집중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혹은 학교부적응으로 진단받는 아동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과연 이 아이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과연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저 말썽꾸러기 정도로만 여겨졌던 우리 아이가 말이다. 미국에서 이런 아동을 위한 학교와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오늘날 공교육 제도권 내에서 장애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이 아이들을 ‘에디슨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런 아이들이 대체로 뛰어난 창의력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며 이 아이들이 재능을 잃지 않고 올바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사랑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학교가 불편한 아이들
학교에 처음 들어가는 아이를 둔 부모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 아이가 과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까?”
“선생님 눈 밖에 나지는 않을까?”
“아이들과는 잘 어울릴까?”

최근 들어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을 둔 학부모들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학교에서 이런 진단을 받은 아이들은 전문의와 상담할 것은 권유받고 약물치료를 포함한 여러 가지 치료를 받게 된다. 이런 치료를 통해 아이들은 야생마 같은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학교에서 많이 나아졌어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선생님과 학부모도 안심이다. “이제 더 이상 말썽부리지 않겠지?” 그러나 아이들은 이제 행복하지 않다. 이들은 세상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집중력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예전에는 이토록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이 가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일부러 시키지 않아도 뛰어난 집중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화되기 시작한 것은 학교가 등장하고 나서부터이다. 학교라는 틀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한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규율과 통제’이다. 일단 선생님을 주목하지 않는 아이들은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게 된다. 공부시간에 딴짓을 하는 일이 많아지면 ‘장애’로 판정받는다. 아이들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기의 입장을 제대로 항변하지 못한다. 어른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미가 없는데 어떻게 집중하란 말인가?”
“나의 주의를 끌고 싶다면 먼저 나의 관심을 사라.”
오늘날 흔히 말하는 아이들의 ‘집중력 장애’는 그러므로 진정한 ‘장애’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에디슨 유전자 혹은 ADHD 유전자
토마스 에디슨이 오늘날 학교를 다녔다면 분명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보기에 매우 심한 정도의 ‘학교부적응 아동’이었던 에디슨은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에디슨의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로 인해 상처를 입지 않도록 그를 감싸 안았고 그를 존중하였으며 그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뛰어난 창의력을 가지고 있는 ADHD 아동들이 흔히 보이는 충동성과 산만함은 전혀 장애의 징후가 아니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농경시대 이전의 수렵시대에는 매우 필요하였으며 부러움을 산 자질이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은 인류의 문명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앞으로 닥치게 될 위기에서 우리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ADHD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통해 그만의 독특한 ‘사냥꾼 vs 농사꾼’ 이론을 펼치고 있는 저자는 ADHD를 유발하는 유전자의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토마스 에디슨과 같은 근대의 유명한 혁신가들을 예로 들면서 그는 ‘에디슨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이 발명가나 혁신가, 탐험가, 기업가가 될 소질이 다분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에디슨의 유전자를 지닌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특별히 당부한다. 아이들이 이해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쉽게 좌절하고 상처받도록 내버려두거나 전혀 필요없는 약물치료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잠재적인 능력을 맘껏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긍심을 길러주라고 말한다.
목차
추천사
감사의 말씀

01 우리 아이들을 새롭게 보자
02 인류의 생존을 도운 유전자
03 장애라는 진단에 대한 해부
04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행동의 신비
05 두뇌발달과 에디슨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
06 학교교육의 개선은 가능한가
07 에디슨 유전자, 약물, 운동 그리고 영양
08 에디슨 유전자를 지닌 아이들을 위한 교육
09 알프레드 애들러의 육아 원리
10 이제는 참교육을 시작할 때
11 에디슨 유전자를 지닌 여성
12 에디슨 유전자를 지닌 아이들과 영성
13 에디슨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14 위험에 처한 인류를 구원할 단 한세대

에필로그
본문중에서
어린이의 ADHD 증상에 대해 인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고, 잠시도 집중을 못하는 성격이 인도 사람들에게도 흔합니까? 한 가지 일에 안주하지 못하여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고, 한 사람과 평생 해로를 하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 헤매는데, 그러면서도 한평생 대단한 창의성이나 천재성을 지니고 사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까?” 한 사람이 “그럼요, 그런 사람들이 많지요”라고 대답하자 나머지 사람들이 맞는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런 성격을 뭐라고 칭합니까?” 앞서 대답을 했던 사람이 다시 답을 하였다. “ 우리는 그런 성격을 아주 거룩한 성격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업의 윤회가 끝나가는 성숙한 영혼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 말은 들은 내가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짓자 나머지 사람들은 아까보다 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p.21)

에디슨 유전자를 보유한 아이나 어른은 천성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질을 지니고 있다.
열정적이다, 창의성이 풍부하다, 무질서하다, 일관성 있게 사고하지 않는다(갑자기 새로운 결론을 내리거나 새로운 것을 관찰한다), 혁신적이다, 쉽게 주의가 산만해진다(달리 표현하면 새로운 자극에 쉽게 주의를 기울인다), 어떤 일에 몰입하는 정신 집중력이 있다, ‘방관자’의 느낌을 이해한다, 결의가 굳다, 상식을 초월한다, 쉽게 따분함을 느낀다, 충동적이다, 모험적이다, 정력적이다 이런 특질들로 인해 이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다
(/ p.27)

농사꾼에게 필요한 인내심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은 작물을 경작하면서 농경사회를 이루어 갔는데, 충동적인데다 감각적 흥분을 추구하는 사냥꾼들은 그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벼가 자라 익을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사냥꾼 종족으로 살아갔는데 지금 지상에는 그들의 후예가 극히 일부만 남아 여전히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다. 이제 ADHD 증상을 지닌 아동들이 사실은 아주 유용한 행동 특성 그리고 유효한 적응력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널리 퍼지고 있다. 더 나아가 현재의 학교교육 제도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지능’ 또는 재능 등에 대해 좀더 폭 넓은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 p.49)

사람이 세상살이를 위해 또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기 위해 알아야 하는 실용적인 지식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은 대개 7세 이후이다. 루돌프 스타이너는(발도르프 스쿨의 창시자) 어린이는 적어도 7세 이전에는 어떤 것도 “억지로 배우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교실의 경직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두뇌의 초기 발달 단계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7세 이전의 어린이에게는 읽기도 가르치지 않는다. 열여섯 살이 되어야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스웨덴 아이들이 더 많은 시간을 교실에서 보낸 미국 아이들보다 학업 능력이 나은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 p.105)

에디슨 유전자를 지닌 아이들은 자극이 강한 환경을 필요로 하기때문에 도전할 만한 거리가 없거나 자신의 흥미를 끄는 것이 없으면 쉽게 따분해한다. 인간이 수렵에 의존해 살던 시기에 이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열정적인 사냥꾼이었지만, 교실에서 충분한 자극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 자극을 만들기 때문에 과잉행동증이라고 불린다. 현재의 교육 제도는 몇 시간씩 한 자리에 단정하게 앉아서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만에 과목을 바꾸어 가며 공부하는 방식을 유일한 교육 방식처럼 여기고 있지만 현실 세계의 직업 가운데 그런 교육 제도에 잘 적응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 p.120)

에디슨 유전자를 지닌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상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말 에디슨 같은 행동 때문에 야단을 치거나 벌을 주고 싶을 때, 아이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그 시각에서 아이의 행동을 교정해주라. “조니, 집 안에서 뛰어 노는 짓 좀 그만해라. 스탠드가 쓰러졌잖니?”라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말하라. “조니, 역시 너는 기가 세구나! 언젠가는 그 기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깨질 물건이 많은 집 안에서 그런 기를 함부로 발산해선 못쓴다. 밖에 나가 다른 놀이를 하든지, 집안에 있고 싶으면 너의 기를 발산한 다른 방법을 찾아 보거라.”
(/ p.128)

놀이와 운동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시작한 일을 끝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심어준다.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고, 무엇을 제대로 할 수도 없으며 벌을 받기도 하는 상황에 있는 인간은 우울증에 걸리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한대로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성취감을 느낄 때 인간은 자긍심을 느끼고 의욕적이 된다. 행동 발달학자들에 다르면 아이들끼리 어울려 노는 일은 몹시 중요한데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사회적 기능들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과 후에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보고 비디오 게임이나 컴퓨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아이들은 점점 고립되어 가고 학교에서도 놀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아이들이 점점 규제를 받으면서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평생에 걸쳐 대인 관계에 문제를 안고 살아갈 조짐을 안고 있는 것이다.
(/ p.158)

호주 애버리진 원주민들의 존재가 서구에 알려진 초기에 그들의 생활상을 목격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그칠 줄 모르는 기쁨과 쾌활함 그리고 아이들의 의연함을 보고 감탄하였다. 세상 어디에도 애버리진 원주민만큼 아이들에게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들이 없었다. 인류학자들은 애버리진 원주민 사회가 인류 사회 가운데 가장 어린이 중심적인 사회라고 말한다. …… 이곳에서는 어린 아기들이 오래 울게 내버려 두는 일이 없다. 부모는 물론 부족 전체가 하나가 되어 아기가 불편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어 해결해 주려고 한다. 애버리진 원주민의 양육 철학은 유아기에 형성된 총체적인 인격이 한 개인의 동기 부여와 의욕을 결정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기에 길러 주어야 하는 것은 상호 관련성이라는 것이다.
(/ p.169)

우리 시설의 아이들이 좀 더 어렸을 때 루이즈는 이 ‘발 빼기 전략’을 멋지게 구사했던 적이 있다. 루이즈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다녀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책을 한 권 들고 차에 올랐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싸움을 시작해서 좀처럼 싸움을 그치지 않으면 루이즈는 차를 길옆에 댄 다음 시동을 끄고 책을 집어 들어 읽었다. 아이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루이즈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너희들이 싸움을 그칠 때까지 나는 재미있게 책이나 읽고 있을 거란다.” 그러면 싸움이 곧 그치고는 했다. 그냥 내버려두는 이 방법은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힘겨루기에서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아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거두어 들여 정서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p.199)

몇 주일 전 나는 에디슨 유전자를 지닌 아이를 둔 어머니들의 모임에 자리를 같이 했던 적이 있다. 한 어머니가 자기 아이가 꽤 오랫동안 숙제를 해 가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와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고, 지미는 어떻게 하겠다고 하나요?” 엄마의 반응에 놀란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머니께서 어떤 조치를 취하실 줄 알았는데요.” “제가 선생님도 아니고 지미 본인도 아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이 알아서 하세요.” “그냥 놔두면 낙제할 텐데요.” 그 어머니는 자신이 집에서 아이에게 가르치는 다른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다고 지미의 인생이 끝장나는 건 아니잖아요.” 사실 그 어머니는 아이에게 자기 방 정돈하는 것이라든지 자제력을 발휘해야 하는 등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한 또 다른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숙제를 해오게 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건 제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했던 다른 어머니들도 모두 놀랐다. 그래서 결국 지미가 고등학교에 못 간다면? 대학에 못 간다면? 좋은 직업을 못 얻는다면?
(/ p.206)


아바타정보|같은옷구입
봄신상품 구입하기